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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겪다/독서의 즐거움

청춘의 사운드

Byeonpd 2016. 9. 28. 02:04





청춘의 사운드

차우진 산문집, 출판사 책읽는 수요일





내게 20대는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손에 쥔 건 거의 없었다. 걱정도 많았다.  가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자부심과 불안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남들과 달라지겠다고 청바지를 찢기도 하고 철학책과 잡지에 나온 남의 취향을 내 것인양 포장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20대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자기 멋대로인 채로 남의 말도 듣지 않으면서,그럼에도 경험과 지혜를 갈구하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을 반복한다. 서른이 넘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른의 취향을,어른의 삶을, 어른의 연애를, 어른의 조건을 막연하게 좇곤 한다.

이건 역설적으로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역할 모델도 없이,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아직 어린애'란 생각을 반복한다.





우린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된다. [브로콜리 너마저 - 앵콜요청금지]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된다.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참으로 지랄 맞은 시간을 지난다.  이 노래는 그 한때를 환기시킨다. 등신 같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찌질하고 한심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이상하지만,따뜻하다.  그렇게 납득된다.  21세기든 20세기든, 누구나 청춘의 일방통행로를 비틀거리며 주행해야 한다는 사실만 남는다.

이 정도 위로를 누가 해줄 수 있었을까. 그해 겨울에는 그 누구도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애썼다', '고생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 더 열심히 뛰라고 했을 뿐이다. 그래야 대기업에 들어가고 대통령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젊은 날의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 [장기하 - 싸구려 커피]


사실, 청춘은 애당초 그런 시간이다. 오랜 경제 불황과 고용 불안이 청년들을 비정규직과 장기 실업 상태로 내몰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래 그렇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이것저것 도와주는 게 없으니 그럴 수밖에. 손에 쥔 것도 없고 경험도 일천하니 모든 게 서툴 수 밖에.


연애도 공부도 사회생활도 통장 잔고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정신 못 차리면 휙, 나가떨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게 있기나 한지 아무것도 모른채 졸업장 하나 달랑 들고 내동댕이쳐진다.


시대의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한 게 과연 내 잘못인가. 내가 찌질한 게 그저 게을러서 그런가. 그게 뭐 얼마나 잘못된 일이기에 할 수 있는 게 이다지도 없는가. 그러니까 그는 시민 사회 혹은 공화국의 본질을 되물었다. 지금의 한국은 과연 그 구성원들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구조인가.


지금의 삶은 지속가능성이 아닌 예측 불가능성에 점점 근접해가고 있다. 이 허약한 기반은 세대에 관계없이 삶의 근본을 흔들어버리는데, 그 위에서 자기 방식대로의 삶을 상상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그런데, 또한 그래서 나는 장기하를 들으면 청춘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걱정하게 된다.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음 달엔 뭘 하며 먹고 살까' 하고 걱정하는 인생을 말이다. 그럴 때면 우습게도 장기하의 음악이 아니라 '성공한 뮤지선'이라는 그의 정체성이 선명해진다.         그의 학벌도 새삼스러워진다. 이때 '역시 그럴 만했네'라고 넘어가는 건 이 견고한 관습과 이데올로기에, 그러니까 삐뚤어진 한국적 삶의 토대에 잡아먹히고 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삼 상기하자면, 젊은은 열정도 뭣도 아니다. 그저 어떤 시간일 뿐이다. 그저 어떤 시간일 뿐이다. 그 시간은 때론 고통스럽지만 때론 환희에 차 있어며 또한 무기력하다. 결국 그걸 어떻게 지내느냐가 관건이다.

장기하는 다른 쪽을 선택했음에도 성공했다. 괴짜 인디 싱어송라이터였던 그는 이제 선망하는 롤 모델이 되었다. 따라서 그의 등장과 대중적 호응은 이 시대 자기 계발의 이데올로기를 소환한다.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이 내내 위태롭게 이어지는 지금의 삶을 주목하게 만든다.

이때 중효한 건 중심이다. 장기하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음악가라면, 그것은 그가 찌질한 청춘 찬가를 불러서가 아니라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20대에게 보내는 편지 [옥상달빛 - 28]


분열이야말로 청춘의 메리트일지 모른다. 처음으로 삶의 공포를 감지하는 시간, 미래에 대한 불안과 확립되지 않은 정체성이 어지러운 시기가 20대라면, 그 혼돈 속에서 갈구하는 건 결국 자기 확신이다.

누군가에게 그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그건 빨리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에 대한 확신은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에나 가까스로 확신 비슷한 게 생길까 말까 하는 것이다.



어금니 꽉 깨물고, 행복해지기 [이장혁 - 스무살 , 푸른새벽 - 스무살 , 가을방학 - 가끔 미치도록 내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20대에 나는 실수와 상처가 두렵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키우리라 믿었다. 그러나 30대에 나는 실수하거나 상처 입을까 봐 벌벌 떤다. 그것은 좀처럼 회복되거나 아물지 않을 것 같다. 20대에 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웃거나 울었나. 그러나 30대에 여전히 남을 의식하는 나를 들여다보며 가끔 웃거나 운다. 20대에는 사랑을 힘주어 말하고 섹스란 말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30대에는 섹스라는 말보다 사랑이란 말을 발음하기가 훨씬 어렵고, 민망하다.:







괜찮아, 모든 건 다 변하니까 [시와 - 시와, / 시와무지개 - 우리 모두는 혼자]


우리는 흔히 좋아하는 것이 오래, 이왕이면 영원히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너와 나의 사랑이 변치 않기를, 이 가게가 문을 닫지 않기를, 이 가수의 노래가 여전하고 이 거리가 그대로이기를,








다른 속도로 살아가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Infield Fly]


나는 이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앞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나쁜가. 달빛요정이 묻는다.





우리는 어쩌면 고아들처럼 [에피톤 프로젝트 - 유실물 보관소]


저녁 무렵의 가로등, 새벽의 도로를 질주하는 트럭들. 아파트의 베란다들. 어지러운 간판들, 다시 거리. 소음과 멜로디들. 아파트 157동에서 떠올라 472동으로 지는 태양. 아무도 없는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 무심히 지나가는 하루와 지하철 환승역. 아무것도 아닌 채로 아무렇지 않게 잃어버린 것들. 그러니까 도시에는 우리는 무언가 잃어버린 채로, 그게 뭔지도 모르는 채로, 잠깐이나마 안락한 채로 매일같이 살아남는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멱살을 잡고 [노라조 - 카레]


어릴 땐 돈키호테가 왜 풍차에 달려들었는지 짐작도 못했다(싸움을 좋아하나?). 스무 살쯤엔 살짝 알 것도 같았다(청춘은 도전하는 거야!). 지금은 '돈기호테처럼 살고 싶다'는 후배가 있다면 뜯어말릴 지경이 되었다(후배님은 곧 서른이라고요!). 

그러니 지금 내가 돈키호테처럼 살고 싶다는 말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한다. 다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 같아 두려울 뿐이다. 그런데 그는 왜 풍차로 달려들었나. 모를 일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비겁하지 않게 산다는 것 [흐른 - 흐른]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운동'하는 사람들은 경계의 대상이다. 1980년대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 시대에 운동권이 대세였다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최규석의 <100도씨>를 보면서도 그런 걸 감지한다. 보고 있으면 뭉클해진다. 그러나 그걸 낭만적으로 이해하는 건 전혀 다른 애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특히 반골[세상의 일이나 권위 따위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 기질을 가진 자들은 튀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눈엣가시였다. 그가 딱히 나의 이익을 해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딱히 마음에 들진 않는데 달리 할 말이 없으니 공익을 해친다는 논리를 쉽게 꺼낸다. 공익의 개념조차 불명확한데도 공익이란 애기를 꺼낸다. 다들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공익을 해치는 노조 파업, 공익을 해치는 과격 분자, 공익을 해치는 촛불 시위, 공익을 해치는 일부 대학생들, 공익을 해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를 악물고


나도 이 책을 쓰면서, 그게 비록 잠시일지라도, 소중하게 읽어나갈 누군가가 있으리라 믿은 시간을 잊지 않겠다. 바로 그것이, 음악이 우리를 잠시나마 나란히 앉히고서 이야기하도록 만들어준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좋은 한때를 보냈다. 앞으로도 각자의 삶에서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대체로 불안과 좌절이 매복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다시 이를 악물고, 행복해질 것.





이 인용구는 모두 책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출처는 "청춘의 사운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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