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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Byeonpd 2016. 10. 9. 12:07

한국이 싫어서


지은이 장강명 장편소설

퍼낸곳 (주)민음사

1판 4쇄 펴냄 2015년 7월 2일

책 속에 인상적인 문구를 인용했습니다. 저작권에 문제 시에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젊은 남자들이 「고해」 노랫말에 빠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예쁜 여자들이 자기한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까 좌절감이이 들거 아냐. 그 좌절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자뻑의 길을 택하는 거지. 그게 된장녀 어쩌고 하며 못먹는 감에 돌 던지는 못된 심보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중년 남자들이 「빙고」를 부르는 이유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아닐까. 다들 이 땅이 너무 싫어서 몰래 이민을 고민하는거지. 그걸 억지로 부정하고 자기 자신한테 최면을 걸고 싶은거야.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라고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라고. 그런데 이민을 가면 왜 안 되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난 초여름이 정말 좋아. 햇빛이 쨍쨍하고,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하지만 공기는 아직 후텁지근하지 않고. 그런 날에는 해가 지면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밖으로 나오게 돼. 하늘거리는 민소매 옷을 입고, 뭔가 모험거리를 찾아서. 젊은 남자한테서 나는 암내랑 가로수 아래서 올라오는 비릿한 물 냄새 같은 게 섞여서 대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지. 모두가 야릇한 흥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살짝만 불꽃이 튀어도 불이 붙고, 섹스를 하게 돼. 그런데 호주는 1년 내내 그런 날씨 아닌가?

하지만 '직장 여성 - 남자 대학생'의 관계는 그런 위기들과는 완전히 달랐어. 말하자면 그때까지 우리 관계는 롤러코스터였어.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고 탈선 위기도 겪었지만 어쨌든 같은 자리에서 함께 흥분하고 함께 소리를 질렀던 거야.

반면 내가 직장이 되자 한 사람은 유원지 밖에,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유원지 안에 있는 것 같은 상황이 됐어. 데이트 비용을 누가 내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어. 갑자기 연하 남친을 들인 느낌이랄까? 회사라는 새로운 환경이 적잖이 스트레스가 되고 누구 다른 사람 품에 안겨서 징징거리고 싶어질 때가 있었는데, 그런 때 지명이 별 도움이 못 댔어. 회사 경험이 없는 사람한테 그런 걸 털어놓는다는 게 좀 멋쩍잖아. 나름대로는 그게 지명을 배려한 거였는데. "넌 말해도 몰라."로 시작하는 나의 신세타령에 걔도 적잖이 답답했었을 거야.

이별을 통보하던 날에도 그렇게 말했어.

"이상형을 너무 일찍 만나는 건 굉장히 안 좋은 일인 거 같아. 내가 지금 서른 중반이라면 아무것도 망설이지 않았을텐데. 분명히 너랑 결혼해서 한국에 남는 편을 택했을 거야."


실제로 걔는 좀 졸렬하게 굴었지 사랑을 인질로 삼았어.

"야, 무슨 사이트가 작동이 안 되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아? 이렇게 한번 해 보고, 저렇게 한번 해 보고,요렇게도 해 보고, 조렇게도 해 보고, 사이트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계속 주먹구구로 그렇게 여기저기 땜빵을 해 보는 거야. 그런 땜빵을 하도 많이 해서 나중엔 뭘 어떻게 했기에 사이트가 다시 돌아가는 건지도 몰라. 이게 나만 이러는 거 같지? 우리 회사 사람들이 다 이렇게 일해. 그래서 경력이 중요한 거야, 이 업계에서. 그래 놓고는 말로는 시스템 동합이 어쩌고 웃기고 있어, 진짜."

"거기서 재료가 좋으니까 누가 만들어도 맛있지. 그런데 내가 집에서 하는 요리도 맛있어.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중에는 내 이름으로 된 식당도 열어 보고 싶어. 내가,사실 어디서 뭘 배우고 일을 해서 남들한테 인정을 받은 게 태어나서 처음이야.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거든. 남자들이라는 게 단순해. 회사에서 인정받으면 얼굴 펴지고 어깨 으쓱으쓱하고 그러는 게 남자들이야"

분위기로 봐서는 얘가 지금 나한테 고백하려는 거 같긴 한데, 어째야 하나 싶더라. 좀 끌리기도 했어. 그동안 쌓인 정도 있고, 또 내가 돌진해 오는 남자한테 좀 약하거든.

한국에서 살아도 그냥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 딱히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한국의 구직 시장이 어떤지도 몰랐어. 그래도 일은 하고 싶었어. 은혜도 그렇고 학생 때는 똑똑하던 여자애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바보 되는 거 많이 봤거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고 그러지 않으면 되게 사람이 게을러지고 사고의 폭이 좁아져.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게 되고. 난 그렇게 되기 싫었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의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 까? 아닐껄?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그런데 그게 전부야. 그 외에는 딱히 이걸 꼭 하고 싶다든가 그런 건 없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를 하고 싶어.

내가 그런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명이는 자기가 주말에 쉴지 안 쉴지도 모르는 생활을 하고 있었어. 데이트 계획 같은 건 세울 수도 없었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호주에서라면 더 쉬울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한국에서는 아직 목소리 큰 게 통해. 돈 없고 빽 없는 애들은 악이라도 써야 되는 거야."라고 하더라.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악다구니도 못 쓰는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진짜 까다로운 주체는 누구인가. 계나 스스로 자신을 까다롭다고 수긍하게 만든, 내면화된 '사육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소나 돼지인 양, 축사에 가두어져 주인이 주는 대로만 먹고 살다가, 돈으로 교환되어야 한다는 길들임의 체제가 한국에서 스스럼없이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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